인터뷰

나무로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문화사학자형 장인, 한국 수제 목검 작가 김종화

작성자최고관리자

등록일2025-11-24

조회수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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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학자형 장인, 한국 수제 목검 작가 김종화

 

서울 지하철 복정역 근처에 자리한 김종화 작가 공방은 흑단 목검과 서각, 소반 등이 저마다의 자리에 놓여있다. 그리고 그의 작은 노트북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방대한 고문헌 자료가 빼곡히 들어 있다. 30년 동안 손으로 깎고 다듬으며 쌓아온 기술, 그리고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모은 자료와 이렇게 얻어진 문화사적 지식이 한 사람 안에서 만난다.
1992년 대학생 시절 PC통신에 수제 목검을 올리며 한국 수제 목검의 역사를 연 그가, 지금은 조선시대 왕실의 ‘신물(神物)’이었던 ‘사인검(四寅劍)’과 ‘사진검(四辰劍)’을 문헌 그대로 만든다. 호랑이 해, 호랑이 달, 호랑이 날, 호랑이 시에 맞춰 검을 깎고, 도교의 제법대로 제를 올린다. 기록에 적힌 그대로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사학자들은 만들 줄을 모르고, 만드는 이들은 고문헌을 파고들지 않는다. 그러나 손과 머리가 함께 움직일 때 전통은 비로소 살아 있는 문화가 되니, 김종화 작가의 목검이 특별한 이유는 수백 년 우리 칼의 역사가 그의 검에 그대로 서려 있기 때문이다. 

글 | 인테리어 전문기자 장영남 jekyll13@naver.com

 

 

 

1. 작가 소개 및 목검 제작의 시작…내게 필요한 목검을 만들다 보니

Q1. 목검은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요?

A. 시작은 단순했습니다. 1992년, 대학생 시절 검도를 배우면서 제 목검이 필요했어요. 마침, 학교에 목공 동아리가 있어서 직접 만들기 시작했죠. 당시에는 일본 검도협회에서 규정한 획일화된 목검만 있었어요. 만 원짜리, 5천 원짜리 목검이 전부였죠.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키가 큰 사람, 작은 사람, 남녀노소, 근력이 다른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검을 쓴다는 건 말이 안 돼요. 
게다가 대한검도, 해동검도 등 유파마다 필요한 검이 달라요. 처음에는 박달나무로 만들었는데, 완전히 실패했어요. 격검하니까 줄줄이 부러지더라고요. 제게 목검 제작을 맡긴 선배들이 실망하셨을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모아서 주며 흑단으로 만들어달라고 했어요. 

 

△ 우리나라 최초 목검 개인전인 ‘49인검전(寅劍展)’에 출품된 작품들.

 

 

Q. 선배들이 되레 더 좋은 목검 제작을 맡긴 거군요. 흑단 목검 반응은 어땠나요?

A. 난리가 났었죠. 당시 한양대 앞 쌍용공예사 사장님이 어린 제가 고가의 흑단을 다량 구입하고 목검까지 제작한다고 하니 “사장이네?” 하시면서 직원들에게 저를 특별히 대우해 주라고 하셨어요. 공장장님을 부르시더니 “앞으로 이 친구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줘”라고 말씀하셨는데, 공장에서는 그 어렵고 힘든 테이퍼 가공까지 해줬어요. 
그렇게 만든 목검을 하이텔, 천리안 같은 PC통신에 올렸더니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처음에는 ‘검도 3단 이상’에게만 판매했어요. 그랬더니 더 난리가 났죠. 30년 넘게 검도하신 사범님들, 관장님들이 저를 찾으셨어요. 방학 때마다 50자루씩 만들면 500만 원을 벌었는데, 등록금이 100만 원이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일주일만 일하면 한 달 생활비가 다 나왔습니다. 그때는 정말 없어서 못 팔았습니다. 

 

Q. 그러니까, 우리나라 수제 목검의 효시라고 봐도 되겠네요. 그런데 2001년에 목검 제작을 멈추고 다른 일을 하셨다고요.

A. 검을 제작하면서 알게 된 어느 선생님께서 “네가 누구 밑에 들어가서 뭘 좀 배워봤으면 좋겠다”라고 하셨어요. 그분이 ‘최 박사님’으로 불리던 분을 소개해 주셨는데, IQ 176의 천재분이셨어요. 6.25 때 강릉 비행장에서 일하시면서 마를린 먼로에게 뽀뽀를 받은 게 평생 자랑이셨던 분이죠. (웃음) 최 박사님은 초등학교만 나오셨지만, 건축, 철학, 어학, 조각, 전기전자, 발명까지 뭐 하나 못하는 게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노래방 기계를 개발한 분이기도 하죠. 
그분 밑으로 들어가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스무 살 때부터 마음속에 정해 둔 게 하나 있었는데, “마흔이 되면 공방을 하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하던 일들을 모두 마무리하고 지금의 공방을 열었어요. 그리고 경인미술관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목검 개인전 ‘49인검전(寅劍展)’을 열었죠.  

 

 

 

2. 사인검과 사진검, 기록 속 신물(神物)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다

Q. 사인검은 작가님의 대표 분야입니다. 사인검 제작은 일반 목검 제작과 어떻게 다른가요?

A. 사인검은 일반적인 목검이 아니에요. 사인검과 사진검은 조선시대 왕실에서 만든 ‘신물(神物)’이에요. 태조 이성계가 처음 만들어 공신들에게 하사한 것이 시작입니다.
저는 이 사인검 제작법을 역사 기록 그대로 정확히 복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검 연구로 가장 뛰어나신 선생님께서 직접 원문을 해석해 주신 자료를 받았어요. 그분은 제게 “이 기록을 다른 사람들에게 줬더니 돈벌이에만 썼다”라며 실망하셨던 경험을 말씀하시며, “김종화 씨니까 믿고 준다”라고 하셨습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기록인가요?

A. 도교의 제법(製法)이 담긴 문헌입니다. 여기에는 사인검을 만드는 시간, 방법, 제(祭)를 지내는 의식, 부적, 주문까지 모든 것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요.
사인검은 호랑이 해, 호랑이 달, 호랑이 날, 호랑이 시(寅時, 새벽3시30분~5시30분_한국, 동경표준시 기준)에 제작해야 합니다. 이 ‘사인시(四寅時)’에 상하좌우의 형상, 즉 검의 전체 틀을 만들어야 해요. 장식은 나중에 해도 되지만, 이 시간에 검의 본질적 형상이 완성되어야 합니다.

 

△ 김종화 수제 목검 작가

 

 

Q. 제작 과정에서 도교 의식을 실제로 치르신다고요?

A. 네, 기록대로 합니다. 먼저 작업장에 부적을 붙여요. 이 부적이 흥미로운 게, 부적의 시조격인 중국 청미파의 부적과는 다른 한국의 독자적인 부적이에요. 이건 청미파 전문가도 인정했습니다. 그다음 제(祭)를 지냅니다. 사인검은 백호신(白虎神)을, 사진검은 청룡신(青龍神)을 먼저 부르죠. 그리고 황제진군(皇帝眞君)에게 “제가 서방 백호신의 명을 받아 사인의 칼을 만드니, 이것이 사인검이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원합니다. 제작 중에도 계속 주문을 외웁니다. 이게 단순한 미신이 아니에요. 다른 데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검 만드는 일에만 정진하겠다는 정신 집중의 방법이죠.

 

Q. 제작이 완성되면 끝인가요?

A. 아닙니다. 마지막 제를 지내야 해요. 사인검은 12일 간격으로 세 번의 제(祭)를 지냅니다. 인일(寅日)에 첫 번째 제(祭), 12일 후 두 번째, 또 12일 후 세 번째. 이렇게 36일이 지나야 비로소 사인검이 됩니다. 사진검도 마찬가지고요.

 

Q. 그럼 제작 시간이 상당히 길겠네요.

A. 제법대로 만들면 총 제작기간은 5~6개월정도 걸립니다. 그러나 주문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면 10년, 20년 걸리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정성이에요. 부적 쓰고, 제 지내고, 주문 외우고... 이 모든 게 그만큼의 정성을 담는다는 의미니까요.

 

 

 

Q. 혹시 돈벌이를 위해 의식을 생략하고 대량 제작하고 싶은 유혹은 없었나요?

A. 솔직히 말하면, 저는 검을 엄청나게 빨리 만듭니다. 12년에 한 번 사인시가 이틀 정도 오는데, 그때 딱 두 번 작업하면 40~50자루는 만들 수 있어요. 수억을 벌 수 있죠.
실제로 어떤 분은 검을 미리 다 만들어놓고 사인시에 숯불에 넣었다가 빼는 걸로 방송 촬영하면서 ‘사인검’이라며 팔았어요. 제게 기록을 주신 선생님이 그걸 보시고 경악하셨죠. 그래서 저한테만 기록을 주신 겁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못해요. 제가 모르고 하는 건 어쩔 수 없어도, 명확한 기록을 받았는데 그걸 무시한다? 고지식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제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정직하게 만들어도 충분히 경제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데, 굳이 나쁜 짓을 할 이유가 없잖아요.

 

 

 

3. 검의 노래, 검결(劍訣)…국가의 평안을 기원하다

Q. 사인검에는 ‘검결(劍訣)’이라는 것이 새겨진다고요. 이게 뭔가요?

A. 검결은 사인검에 금이나 은으로 입사(入絲)하는 문구입니다. 기록에 “금 또는 은으로 하라”고 명시되어 있어요.
검결의 내용이 정말 놀랍습니다. 처음에는 “하늘의 신이여 내려오라, 땅의 신이여 일어나라”로 시작해요. 그다음 천지창조 부분이 나옵니다. 해와 달, 강과 산이 생기는 과정…, 마치 성경의 창세기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현참정(玄斬正) - 악을 참하라’라는 문구로 끝납니다.
이게 단순히 적을 베는 게 아니에요. 세상의 모든 악을 참해서 세상을 평안하게 한다는 거대한 염원이 담긴 겁니다. 그래서 사인검은 왕실의 평안, 나아가 국가의 평안을 기원하는 신물이었던 거죠.

△ 검결은 사인검에 금이나 은으로 입사하는 문구로, 국가의 평안을 기원한다.

 

 

Q. 별자리처럼 생긴 문양도 있는데, 이건 또 뭔가요?

A. 네, 사인검에는 ‘천문수호성(天文宿虛星) 28수’ 같은 천문 요소가 들어갑니다. 이 천문수호성 문양도 삿된 기운을 누르고 평안을 기원하는 사인검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어요.
사인검과 사진검을 동양철학으로 보면, 사주가 모두 ‘양(陽)’입니다. ‘순양검(純陽劍)’이라고도 불려요. 순수한 양의 기운으로 음의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는 철학이 담긴 거죠.
그래서 흥미로운 점은, 사인검과 사진검에는 형상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요. 다른 검들은 “길이는 한 자루 몇 푼, 손잡이는 몇 푼, 방패는 위 12각 아래 8각…”처럼 설계도를 보는 것처럼 상세한 기록이 있는데, 사인검은 그런 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형태보다 ‘순양’이라는 상징성 자체가 중심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목재든 철이든 상관없고, 크기나 형태도 자유로운 겁니다. 음양오행의 철학적 원리에 따라 신물이 되는 거니까요.

 

△ ‘천문수호성 28수’ 또한 삿된 기운을 누르고 평안을 기원하는
사인검의 상징적 의미를 담는다.

 

 

Q. 그럼 목검으로도 진검과 똑같이 신물이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A. 그렇습니다. 최용진 명장님(증평대장간, 대장간부문 고유기능전승자 1호)과 진검도 제작했지만, 기록을 보니 목검도 신물이 된다는 철학적 원리가 명확히 나와 있어요. 재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제작 과정과 정신이 중요한 겁니다.

 

 

 

4. 블랙의 아름다움, 흑단의 물리학

Q. 주로 흑단을 사용하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흑단은 정말 매력적인 나무입니다. 색상도 아름답지만, 손으로 잡았을 때 아기 살결처럼 보들보들해요. 사람 손과의 친화력이 뛰어납니다. 비싸서 좋은 게 아니라, 실제로 몸으로 느꼈을 때 정말 좋은 나무예요. 게다가 제가 은입사, 금입사 작업을 하는데, 그게 가장 돋보이게 해주는 게 흑단입니다. 블랙의 아름다움이죠. 대비감이 훌륭해요.

 

Q. 그런데 목검 제작에서 ‘과학’을 강조하신다고요?

A. 이게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입니다. 검도계에는 신비주의에 심취한 분들이 많아요. ‘기’, ‘공력’, ‘내공’ 이런 얘기들을 하십니다. 물론 나쁘진 않지만, 저는 검은 과학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검은 인체를 고려해야 해요. 키, 몸무게, 팔 길이, 다리 길이를 모두 감안해야 합니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검은 몸을 중심으로 해서 원형으로 휘두르는 거잖아요? 그럼 원심력이 작용합니다. 길이와 질량의 분포, 무게중심의 위치가 대단히 중요해요.

 

△ 우리나라 최초 목검 개인전인 ‘49인검전(寅劍展)’에 출품된 작품들.

 

 

Q. 이게 제대로 안 맞으면 어떻게 되나요?

A. 사람이 다칩니다. 검도 하는 사람들은 처음에 손목을 거의 다 다쳐요. 저도 다쳤는데, 3일 있다가 해도 아프고, 일주일, 3개월, 1년이 지나도 아프더라고요. 한 번 다치면 대단히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인체를 해치지 않는, 안 다치는 검을 만들어야 해요. 그런데 초보자, 여성, 어린이, 힘 좋은 사람, 수련 많이 한 사람…., 다 달라요. 고수들은 아무 검이나 줘도 잘해요. 하지만 각자에게 맞는 검이 따로 있습니다.

 

Q. 그럼 맞춤형이네요?

A. 마치 옷과도 같아요. 자라면서 맞는 크기가 있고 그때그때 필요한 상황별 옷차림이 있고. 자기한테 딱 맞고 편하고 예쁘면 더 좋잖아요. 초보 때 맞던 검이 고수가 됐을 때도 맞냐? 아니에요. 고수가 되면 근력도 있고 운용을 잘하니까 또 다른 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검에는 물리학적 해석과 인체공학적 해석이 반드시 들어가야 합니다. 이걸 담지 못하면 검은 그냥 작대기예요.

 

△ 우리나라 최초 목검 개인전인 ‘49인검전(寅劍展)’에 출품된 작품들.

 

 

 

5. 서각, 은입사, 그리고 소반…목재를 다루고 칼을 쓰니 모든 것이 연결된다

Q. 목검 외에도 서각, 조각, 은입사, 소반 등 다양한 작업을 하십니다. 어떻게 확장되었나요?

A. 서각은 직장 다니면서 시작했어요. 나무로 뭔가를 하고 싶었는데, 서각은 목판 하나에 칼 몇 자루, 망치 하나면 되잖아요. 그래서 배우러 갔죠. 그런데 배우고 나서 깨달았어요. 서각에서 기술은 5%밖에 안 돼요. 2~3개월이면 기본은 충분히 익힐 수 있습니다. 나머지 95%가 서예와 문화사를 이해하는 일이에요.

 

Q. 어떤 의미인가요?

A. 서각을 하려면 서예를 공부해야 해요. 서예가의 계보를 알아야 하고, 문인화도 알아야 해요. 남종화, 북종화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 문화사를 이해해야 합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님, 소치 허련 선생님, 의재 허백련 선생님...예를들면 남종화의 경우 이러한 흐름을 알아야 문인화의 서각에 대해 얘기할 수 있어요. 나무에 그냥 새기는 게 아라, 거기 담기는 그림과 문자의 문화사적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항상 부족하죠. 어떻게 그걸 다 공부하겠어요.

 

Q. 은입사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A. 사인검에 금이나 은으로 입사하라는 기록이 있었어요. 천문수호성 28수 같은 문양을요. 그럼 해야 되잖아요. (웃음)
그래서 연구하고 공부해서 20년 넘게 하고 있습니다. 서각이든 조각이든 은입사든, 다 목재를 다루고 칼을 다루니까 연결되는 거예요. 하나도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Q. 최근에는 전통 소반에 집중하고 계신다고요.

A. 소반은 조선시대 때 모든 사람이 한두 개씩은 가지고 있었던 물건이에요. 근데 지금은 소반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젊은 세대는 단어 자체를 모릅니다.
더 큰 문제는 현업에 종사하고 계신 이수자가 없다는 거예요. 명맥이 끊길 위기에 있어요. 그래서 이종덕 선생님께서 이수자 과정을 시작하셨고, 저는 1기로 들어갔습니다. 30명까지 모으는 게 목표예요.

 

△ 조선시대 <조검식(造劒式)> 문헌을 바탕으로 그대로 복원한 검.
현존하는 우리나라 문헌과 유물을 통틀어 가장 화려한 신검으로 평가받고 있다

 

 

 

6.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 그게 전부다

Q. 30년 가까이 목공예 한 길을 걸어오신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A.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만 해야 하는 사람이에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그게 목검이고, 목검 중에서도 사인검, 사진검이죠. 지금은 더 나아가서 진검까지 만들고 있고요. 서각이나 조각, 은입사, 소반은 변두리예요. 서각으로 상도 수차례 받았으니까 서각쟁이라고 해야 하지 않냐고도 하지만, 전 그렇지 않아요. 그건 저를 표현할 수 없어요.

 

Q. 작가님의 작업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한다면?

A. 그래서 밖에 나가면 이렇게 말해요. “저는 목검 작가입니다. 수제 목검 작가”라고요. 서각도, 은입사도, 소반도 다 좋아하지만, 저를 가장 정확히 설명해 주는 한 단어는 목검이에요. 
그런데 저는 전통공예도 하지만, 기계를 설계하고 CNC 공부를 하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이걸 다 묶어서 뭔가 하나로 규정 하기에는 개연성이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사실 저도 제 아이덴티티를 정하기가 어려워요. (웃음) 
그냥 ‘좋아하는 거 하고 사는 사람’이 맞는 것 같아요. 나중에 60대가 되면 뭔가 하나 딱 잡아야겠지만, 지금은 그냥 놔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인생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어요.
“그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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