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무로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일즉다다즉일(一卽多多卽一), 심은하 작가

작성자최고관리자

등록일2025-03-03

조회수 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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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일즉다다즉일(一卽多多卽一)
심은하 작가

 

우리 사회가 피로한 건 맞다. 경제적으로는 불확실성이 크고 사회적 관계는 개인화로 인해 고립감이 깊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혼란 그 자체이다. 

이런 시대에, 개별과 전체의 조화, 상호 의존적인 관계 맺음, 변화의 수용과 같은 메시지가 내포된 그의 작품이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것만은 분명했다. 심 작가를 만나러 가는 날도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 체포에 나섰지만, 대치 끝에 5시간 만에 철수한 날이었다. 

심은하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우리는 나아질 수 있을까.

글 | 장영남 인테리어 전문기자 jekyll13@naver.com

 

 

제1장, 일즉다, 다즉일(一卽多多卽一) 

 

Q. 전시회 명이 ‘일즉다, 다즉일(一卽多多卽一)’입니다. 전시를 통해, 또는 출품작을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까.

A. 모든 것이 연결되고 통합된다는 원리를 담고 싶었습니다.  
‘일즉다, 다즉일(一卽多多卽一)’이라는 불교 사상에 동요되었습니다. ‘일(一)’은 하나, 단일성을, ‘다(多)’는 여럿, 다양성을 뜻합니다. 그래서 일즉다(一卽多)는 하나가 곧 전체를 포함하고 다즉일(多卽一)은 전체는 곧 하나임을 뜻합니다. 
한 방울의 물이 바다와 다르지 않듯이, 나무가 모여 하나의 숲을 이루듯, 모든 존재가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불교에서 ‘일(一)’과 ‘다(多)’는 존재와 인식, 관계성, 본질을 논할 때 자주 사용돼요. ‘조화와 상호 의존성’을 강조하는 화엄 사상의 핵심 개념이라고 합니다. 

 

 

 

 

△ 2024년 12월 27일부터 2025년 1월 10일까지 구띠갤러리에서 7년만에 첫 개인전을 열었다.

 

Q. ‘일즉다, 다즉일(一卽多多卽一)’ 사상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은 어떤 것입니까.

A. <두번째 우주>라는 작업물에서 ‘일(一)’과 ‘다(多)’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두번째 우주>는 투명 아크릴 위에서 수많은 나무 물고기가 원을 그리며 헤엄치는 구성입니다. 어떤 물고기는 역방향으로 나아가고 또 어떤 물고기는 무리에서 이탈했지만, 결국 물고기들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하나의 커다란 흐름을 이룹니다. 

 

 

△ <두번째 우주>  각각의 물고기는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그들의 운동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패턴을 형성한다. 

 

<一(일)과 多(다) 사이의 파레이돌리아>는 저마다의 깊이와 높이 길이를 지닌 수많은 층이 모여 전체를 이룹니다. 240cm 길이의 대형 우드 슬랩에 결들이 제각각 겹쳐 있지만, 개별적으로 따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형상으로 공존합니다. 구체적 형상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개방적 조형 언어가 사용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다층적 해석의 여지를 준다는 게 <두번째 우주>와 다르다면 다른 점인데요. 

 

   

△ < 一(일)과 多(다) 사이의 파레이돌리아> 2024, 2440×640×55(㎜). 일즉다다즉일을 넘어 ‘공(空)’과 ‘연기(緣起)’까지 함축하는 깊은 철학적 메시지를 내포한다.

 

이를테면, 시각적 감각에 집중하는 이들은 리드미컬한 패턴과 질감이 있는 조형물로 인식하고, 또 나무의 재료적 특성을 중시하는 이들은 나무의 결과 생명의 흔적을 기록한 조형물로 받아들입니다. 철학적 사유가 깊거나 불교적 개념에 익숙한 이들은 ‘무상(無常)’과 ‘연기(緣起)’를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나무의 결이 갈라지면서도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는 것은 ‘모든 것은 변화하며, 그 변화 속에서 관계성을 맺고 있다’는 불교적 연기(緣起) 개념과 유사합니다. 실제로도 < 一(일)과 多(다) 사이의 파레이돌리아>는 전시나 이동의 상황에서 결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곤 하는데 이조차 작품의 일부로 여기므로 따로 보수하지 않습니다.  

 

<一(일)과 多(다) 사이의 파레이돌리아>가 보는 사람의 경험과 관점에 따라 다른 형상으로 인식되고 이런 ‘개별적 인식(多)’이 결국 하나의 ‘본질적 흐름(一)’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도 ‘일즉다(一卽多)’ 개념을 드러냅니다. 어떻게 해석되든, <一(일)과 多(다) 사이의 파레이돌리아>가 보여주는 ‘선형적이고 리드미컬한 흐름’이라는 시각적 구조는 변하지 않으니까요. 

 

 

제2장, 그 시작


Q. 작품의 구조적 특징과 표현 방식이 일즉다, 다즉일(一卽多多卽一), ‘무상(無常)’과 ‘연기(緣起)’과 같은 불교 철학과 조응하고 있습니다. 목공예는 어떤 이유로 시작했습니까. 작품이 이토록 철학적이고 사유적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A. 삶이 요란히도 흔들렸을 때, 저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문제 앞에서 각자의 선택을 합니다. 어떤 이는 그대로 나아가고, 또 어떤 이는 방향을 돌려 다른 인생을 살기도 합니다. 저는 선회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죠. 내가 나로서 가장 편안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의 모습이, 제 모습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자연계는 획일성과 거리가 멉니다. 두 개 이상의 동일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하나하나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끊임없이 순환하죠. 각자, 자신이 편안한 모습이 있습니다. 전 사람들이 그걸 찾기를 바랍니다.
늦은 나이에 들어선 길이라 더 철학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가야 할 길을 정한 순간부터는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이번이 첫 개인전입니다. 지난 7년의 흔적이죠.   

 

 

 

△ 센터피스 시리즈는 심 작가의 철학적 사유와는 별개인 오브레 라인으로, 작가의 조형적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제3장, 본(本)

 

Q. 역시, 작가님의 삶의 자세가 작품에 투영되고 있었군요. 나무만을 가지고 작업하십니다. 작가님에게 ‘나무’는 무엇입니까.

A. 본(本)입니다. 어릴 적부터 나무가 많은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나무 사이에서 나무와 함께 자랐습니다. 대학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관련 분야에서 일했지만, 나무를 만지며 살고 싶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주말마다 나무 시장에 나가 한없이 나무를 구경했습니다. 온종일 앉아 온갖 생김새의 나무를 바라보고 있자면, 제 손에 나무 한 장 쥐여 주며 장을 정리하는 분도 계셨고요. 
나무를 보고 만질 때마다 나무가 마치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나무이든 상관없이 나무가 사람처럼 느껴지니, 이 나무가 알고 싶어집니다. 나이테, 옹이, 상처, 균열, 벌레가 남긴 구멍, 그리고 형태를 살피며 나무가 어떻게 환경과 싸우고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왔는지 상상합니다. 그리고 그 흔적을 어떤 새로운 의미와 가치로 전환할 수 있는지 깊게 사색하죠.  

 

△ 나무 사이에서 나무와 함께 자란 그에게 나는 본이다.  

 

△ 전시장 입구에 자리한 조형물.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지난 작업은 대부분 똑바로 보기 불편하나, 그럼에도 내가 택한 투명 옷”이라고 설명했다. 

 

 

제4장, 윤회(輪廻)와 생명의 흐름

 

Q. “나무의 생존 기록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라는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어떤 말씀인지 좀 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이 부분도 불교 철학과 맞닿아 있습니까.

A. 보통 그런 흔적은 가공성이나 내구성, 심미성과 같은 실용적 관점에서는 결함이라고 여기지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이테의 불균형이나 균열은 특정 시기에 가뭄과 같은 급격한 환경 변화가 있었음을, 옹이는 가지가 떨어져 나갔음을, 휘어진 형태는 바람이나 중력으로 인해 자연스러운 성장을 이루지 못했음을 뜻합니다. 
일반적 기준에서 벗어난 이런 나무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건, 그 나무만이 갖는 유일무이함이 깊은 울림을 주기 때문인 듯합니다. 환경과 관계 맺으며 자기 모습으로 살아왔기에 인생의 주인공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같은 작업을 두 번 반복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나무 역시 동일한 작업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무의 특성을 존중했을 때, 사람들에게 감동과 감흥을 주는 좋은 작품이 탄생한다고 생각해요.  

 

Q. 나무의 생존 기록이 작품의 핵심이 된 대표적 작품을 소개해주세요.

A. <無爲(무위)_존재의 뿌리>는 심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심지 부위는 산업적으로 가치가 없어 버려지거나 폐기됩니다. 그러나 저는 심지를 중심부에 배치했습니다. 불교에서 무위(無爲)는 인위적인 개입 없이, 자연의 흐름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버려질 뻔한 심지를 작업의 핵심으로 삼아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본질적인 것’이라는 무위(無爲) 사상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 <無爲(무위)_존재의 뿌리> 월넛, 870×870×50(㎜)는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해 시간의 흐름과 나무가 지나온 과정, 그리고 자연이 만들어낸 흔적을 시각적으로 형성화했다.


두 개의 나무 조각을 겹쳐 놓은 <너와의 공감>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포개어질 때 무늬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합니다. 한 생에서의 경험과 흔적이 마치 다음 생에서도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두 나무가 서로 연결되며 존재하죠. 그러다 보니 각자의 상처도 함께 이어지는 구조인데, 이건 삶의 흔적과 상처가 단절되지 않고 윤회 속에서 이어져 새로운 존재의 일부가 된다는 불교적 사유를 드러냅니다. 
작업을 통해 삶도, 죽음의 본질도 돌아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로 전환되는 과정이라는 게 저의 죽음에 대한 시각입니다. 

 

△ <너와의 공감> 월넛, 740×740(㎜). 각각의 나무에는 흠결이 있으며, 이것이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Q. 불교적 사유에 그토록 동요된 이유는 뭘까요.  

A. 불교는 세상의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본래의 자아를 찾고 자유를 얻는 길을 제시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온전히 제 모습으로 살고 싶습니다. 본래의 자성(自性)을 따르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며 내 길을 가고 싶습니다. 이런 여정을 통해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작업 방식도 예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네요. 

 

△ 심은하 작가에게 작업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마무리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다. 

 

 

제5장, 시각 디자인과 MASS

 

Q. 전통 목공예와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공예라기 보다는 조형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작업에 어떤 기법을 주로 사용합니까.     

A. 작업은 항상 덩어리, 매스(Mass)로 시작됩니다. 나무를 깨끗하게 평을 친 다음 어떻게 이 나무가 살아왔는지 살피며 형태를 만들어갑니다. 겉을 벗겨내고 깨끗이 정리하면 그 안에 담긴 나무의 이야기가 선명히 드러나니, 이 과정은 마치 나무와 대화하는 것과 같습니다. 
디지털 스캔이나 CNC 가공을 활용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저의 작업 방식은 전통 목공예와는 다릅니다. 나무를 재료 삼아 순수 미술의 예술적 접근을 시도하면서도, 조각의 요소를 결합합니다. 이는 때로 순수미술과 공예, 조형 예술 사이에서 애매한 위치로 보일 수 있지만, 저는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 합니다.  

 

작업은 항상 매스(Mass)에서 시작된다. 깨끗하게 평을 친 다음 어떻게 이 나무가 살아왔는지 살피며 형태를 만들어갑니다

 

△ 심은하 작가는 디지털 스캔과 CNC 가공을 활용한 작업을 주로 한다.

 

 

 

제6장, 너와 나, 그리고 우리

 

Q.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계와도 대화할 것 같습니다.  

A. 기계와도 대화합니다. 기계가 과도하게 사용되었을 때는 마치 동료처럼 다독이고 기름칠 합니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작동하는 순간부터는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하나의 존재가 됩니다. 이런 태도는 나무처럼 기계도 단순한 도구로 대하지 않고, 그것과 교감하며 그 특성을 존중하려는 저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되는 듯합니다. 나무도 기계도 인간도 변화 속에서 관계 맺으며 함께 존재하니까요.

 

심은하 작가
이메일 주소 E.h.kim@hanmail.net
인스타그램 @simeun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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