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무로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성실한 노동의 귀환, 나무 예술가 주명한

작성자최고관리자

등록일2025-05-05

조회수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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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 중인 주명한 작가.

 

 

“왜 사람들은 손으로 만든 것을 좋아할까요?”
“작품을 대하는 태도를 보는 거죠. 제품이든 작품이든 사람들은 정성이 담긴걸 좋아합니다.”

 

그에게 그라인더는 화가의 ‘붓’과도 같다. 분당 12,000번 회전하는 1mm의 날로 나무 표면을 하나하나 꾹꾹 눌러가며 찍듯이 선을 그린다. 그라인더로 정확한 선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서너 차례에 걸친  반복 동작을 필요로 하니, 작품 하나를 완성하려면 최소 5만번의 반복 행동을 수행해야 한다. 이보다 더한 정성이 있을까. 


그를 관통하는 두 개의 단어, ‘성실한 노동’과 ‘태도 미술’은 그의 예술 세계를 정확히 드러낸다. 노동의 가치가 점점 희미해지는 시대이기에, 그의 작품 세계는 도리어 그 반대편에서 선명하게 빛난다. 나무 예술가, 주명한과 이야기를 나눴다.  

글 | 장영남 인테리어 전문 기자 jekyll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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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나무로 만든 '나무의 뼈' 시리즈는 주명한 작가의 시그니처 작품 중 하나이다. 결을 따라 태우고 파고 태우고 파내기를 
반복해 조재와(봄 여름 자란 부드러운 결) 만재(겨울을 이겨낸 단단한 결)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Q. 몇몇 작품은 면의 구성력이 특히 뛰어납니다. 조형성과 리듬감은 현대 건축의 미학과도 맞닿아 있는 듯합니다. 작품 구상을 먼저 하고 작업을 시작하시는 걸까요. 

A. 저는 상당히 직관적으로 작업합니다. 스케치나 드로잉은 하지 않아요. 나무마다 성격이 워낙 다르거든요. 나뭇결, 나이테, 물성, 표면의 감촉까지 제각각입니다. 그런데 작업 전에 도면을 그려버리면 그 나무가 가진 고유한 특성을 억누르게 되죠. 마치 설계된 틀에 나무를 억지로 끼워 넣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전 나무의 성격을 먼저 읽습니다. “이 나무는 결이 이러하니, 이런 접근이 어울리겠다”라는 식으로 직관적인 구상을 해요. 그 직관이라는 건 결국 제가 살아오면서 쌓은 경험과 지식이 순간적으로 반응해 나타난 결과일 텐데요. 작업 대부분이 직관에서 이뤄져서, ‘직관의 숲(Forest of Intuition)’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한 적도 있어요. 

 

△ 옹이knar_生死點 (point of life and death) 2025_삼나무_730x590x50mm.

 

△ 나의 패턴 N30c(my pattern N30c) 2025_삼나무_960x635mm.

 

△ 2024년 4월 26일부터 5월 26일까지 갤러리스테어(GALLERY STAIR)에서 개최한 '직관의 숲' 전시에서.

 

 

 

Q. 작품을 예로 들며 설명해 주시면 좋겠어요. 옹이를 시작으로 파동처럼 번져가는 저 작품은 어떤 직관에서 비롯된 것인지요.

A. 파동이 퍼져 나가는 출발점은 ‘옹이’입니다. 옹이는 새로운 가지가 돋아난 부위예요. 새 가지가 돋는 부위는 특히 단단한데, 나무가 쉽게 부러지지 않도록 영양을 그곳에 집중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무가 쓰러지거나 가지가 부러지면, 영양이 많은 옹이부터 비나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되어 미생물이 침투하며 썩기 시작해요.
어떻게 보면, 인간과 닮았습니다. 새 가지가 돋는다는 것은 생명이 시작된다는 의미인데, 역설적으로 바로 그 순간부터 죽음 또한 함께 시작됩니다. 옹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입니다. 그 경계에서부터 삶이 파동처럼 번져 나가는 거죠. 죽음이란 삶의 맨 끝에 따로 놓인 게 아니라, 죽음 직전까지 계속해서 ‘삶’이 이어졌던 거예요. 결국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생각입니다. 나무를 보며 늘 그런 것을 느껴요.

 

 

△ 옹이 시리즈.

 

 

 

Q. 옹이에서 삶과 죽음을 떠올리셨다는 말씀, 굉장히 철학적이고 신선한 접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A. 사실 제 작업에 처음부터 특별한 철학이나 개념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노동하는 시간’ 그 자체입니다.
제 작업 방식은 무척 단순하고, 때론 무모할 정도예요. 1mm의 날이 분당 12,000번 회전하는 그라인더를 들고, 나무 위를 꾹꾹 눌러가며 찍듯이 선을 그어나갑니다. 예를 들어, 너비가 30cm인 면을 채우려면 최소 300번을 찍어야 합니다. 하지만, 선이 균일하게 나오지 않아 한 지점을 세 번 이상 반복해서 찍어야 하고, 결국 한 줄을 완성하려면 900~1,000번의 손길이 필요해요. 50줄로 이뤄진 작품 하나를 완성하려면 무려 5만 번의 손길을 거쳐야 하는 거죠. 
이 과정은 엄청난 집중력과 체력을 요구합니다. 손을 여러 번 다쳤어요. 그라인더는 자비가 없거든요.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날이 그대로 쓱 들어가 작업 전체를 망치게 돼요. 하루, 이틀, 사흘… 매일 몇 시간씩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허리가 아파 자리를 잠시 떴다가 다시 앉기를 여러 번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문득,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수많은 의문이 머리를 스쳐요. 작업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런 질문과 생각들을 기록해 두는데, 그렇게 쌓여가는 메모들은 어느 순간 저만의 작업 철학이 되기도 해요. 저는 이 기록을 ‘노동요’라고 부릅니다. 결국 제 작업의 모토는 ‘성실한 노동’이에요. 나무 예술을 시작할 때부터 작업의 저의 신념은 단순했습니다. “그냥 성실하게, 꾸준히 해보자”는 것이었어요. 
저는 누군가에게 목공을 배우지 않았어요. 직접 부딪히고 실험하며 터득한 쪽입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배웠다면, 그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가르쳐 준 사람을 넘어서려는 데에만 얽매였을 겁니다. 저는 그보다는 저만의 방식과 태도로 제 세계를 만들어가고 싶었습니다.

 

△ 그라인더 드로잉 기법으로 완성된  세 점의 작품과 주명한 작가. 한 점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톱날이 지나간 횟수는 무려 67,400번에 달한다. 

 

 

 

Q. 작업 중 떠오른 사유가 철학으로 이어진 사례를 들려주세요.  

A. 어느 날 작업을 하다, 헤겔의 변증법이 떠오른 적 있어요. 정(正)·반(反)·합(合)의 구조가 제 작업 방식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전시명을 ‘정·반·합’으로 정하기도 했고요.
자연 그대로의 나무 상태가 ‘정’이라면, 저는 그 나무를 태우고, 파내고, 깎습니다. 일종의 ‘반’, 즉 파괴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파괴를 통해 오히려 나무는 나무의 본질에 가까워져요. 그게 저에게는 ‘합’입니다. 그렇게 완성된 하나의 ‘합’은 다시 다음 작업의 출발점이 되고, 또 다른 정·반·합의 순환으로 이어집니다. 제 작업은 그런 식으로 계속 확장되고 쌓여가는 방식이에요.
 

 

Q. AI시대에 들어서며 인간 노동의 가치는 더욱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이토록 ‘성실한 노동’에 의미를 두는 이유는 뭘까요.

A. 저는 작업을 음악이나 스포츠와 자주 비교합니다. 무대에 오르기까지, 경기에 나서기까지 절대적인 고독의 시간과 수없는 반복 훈련의 과정이 따라붙죠. 피아노든 바이올린이든, 수십 년을 매일같이 연습해야 겨우 무대에 설 수 있어요.
그렇게 어렵게 선 무대 위에서도 관객은 단 1초 만에 그 사람의 실력을 알아봅니다. 스포츠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훈련을 해왔는지는 단 한 장면이면 드러나죠. 요리도 그렇고요. 썰고, 굽고, 끓이는 과정을 오랜 시간 거쳐야만 요리 하나가 나옵니다. 그게 겨우 출발점이에요.
그런데 예술은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습니다. 준비 없이 들어왔다가 쉽게 빠져나가기도 하죠. 그래서 ‘개나 소나 예술한다’는 말도 생겨났겠죠. 저는 예술도 음악이나 체육처럼 절대적인 시간을 들여야 진입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을 들이지 않고는 결코 본질에 닿을 수 없어요.
결국 최고의 재능은 ‘꾸준함’이라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도 훈련이 없으면 결과에 도달할 수 없어요. 작품의 취향은 갈릴 수 있지만, 작업을 대하는 ‘태도’는 누구에게나 분명하게 보이는 법입니다. 태도는 감출 수 없는 진심이니까요.

 

 

△ 타지 않는 형태 B1, W2 (Unburned form B1, W2) 2024_은행나무_W1780x745x40mm.

 

 

 

Q. 사실 우리는 모두 ‘중간에 포기해 본 사람’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밀고 나가는 ‘꾸준함’에 감동하는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는 사용하는 도구가 궁금해지는데요. 주로 어떤 도구들을 사용하시는지요. 

A. 기본적인 목공기계 들을 사용하고요 수작업 도구인 끌이나 칼등은 대부분 직접 만들어 쓰고있습니다.
그라인더 작업을 많이하게 되는데,
세 대를 번갈아 사용해요. 작업 시간이 길어지면 열이 많이 나서 기계들이 견디지 못하거든요.
가르거나 켜는 작업, 선을 긋는 주로 핸드쏘를 사용합니다. 주변에서는 “이 정도면 CNC로 하는 게 낫지 않냐?”는 얘기를 자주 하는데, 저는 CNC를 쓰지 않고 있어요. ‘손맛’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에요. 똑같은 문양이라도 기계로 파낸 것과 손으로 새긴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일부 작업에는 CNC가 더 어울리기도 하지만, 지금은 손으로 작업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요.

 

△ 주명한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도구들.

 

△ 작업 중에.

 

 

 

Q. 즐겨 쓰는 나무도 있을까요?

A. 저는 ‘삼나무’를 자주 씁니다. 결이 분명해서 제 작업에 잘 맞아요. 삼나무를 사용한 <나무의 뼈> 시리즈는 저의 시그니처 작업 중 하나예요. 이 작업은 말하자면, ‘나무의 시간을 파내는 일’입니다. 
목재 단면을 보면 진한 선과 흐린 선이 반복되는데, 흐린 부분은 ‘조재(춘재)’라고 해서 봄에 자란 조직이고, 진한 부분은 ‘만재(추재)’라고 해서 여름 이후에 자란 조직이에요. 조재는 성장기인 만큼 섬유질이 연하고 폭이 넓고요, 만재는 휴면기를 대비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조직이 조밀하고 단단합니다.
제가 파낸 부분은 주로 봄, 즉 살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그 결과 남은 건 단단한 가을의 결, 즉 ‘뼈’입니다. 나무의 사계절 중 ‘가을’만을 남긴 셈이죠. 봄의 살을 벗기고 가을의 골격만 남긴 구조이기에 작업의 제목을 <나무의 뼈>라고 지은 건데요. 사람도 뼈가 있어야 설 수 있듯이, 나무도 이 뼈 같은 가을의 결이 중심을 잡아주는 겁니다. 좁지만 단단한 만재는 마치 구조물의 골조처럼 나무의 형태를 지탱하고 있어요. 
저는 나무가 150년 동안 스스로 ‘생의 스케치’를 그려 왔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저, 단순한 노동으로 그걸 드러냈을 뿐이죠.

 

 

 

 

△ 나무의 뼈_no18 (bone of wood_ no18) 2023_삼나무_685x2020x60mm.

 

 

 

Q. 전에는 CF 일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작업 전반에서 독특한 감각과 신선함이 묻어나는 듯합니다. 

A. 네, 미대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고, 졸업 후 광고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24년 동안 CF를 만들었는데, 대략 300~400편 정도 작업한 것 같아요. 대한항공,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 광고도 많이 했습니다. 카피라이팅도 함께 해서 글을 쓰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고요. 지금도 작업을 하며 떠오른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데 익숙한 건 그 덕분입니다.

 

 

Q. 광고 일을 그렇게 오래 해오셨다면, 예술로 전향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A. 광고 일이 저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어요. 일도 많았고, 하루 종일 머리만 써야 하는 삶이 어느 순간 너무 고되게 느껴졌습니다. 아이가 둘 있는데,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함께한 시간이 거의 없었어요. 그게 늘 마음에 걸렸죠. 그래서 ‘언젠가는 광고 일을 정리하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보다, 오랫동안 해온 일을 내려놓는 게 더 어려웠어요. 진행 중인 일도 있고 경제적인 부분도 얽혀 있었고. 그래도 ‘너무 늦기 전에, 몸으로 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엔 스스로를 농담처럼 저를 ‘뇌가다꾼’이라고 불렀어요. 늘 머리만 쓰며 사니까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몸도 쓰는 노농에 대한 갈망이 점점 커졌습니다. 그런 마음이 결국 지금의 작업으로 이어졌죠.

 

△ 수축과 팽창사이 2022(between contraction and expansion_느티나무, 화강암, 스테인리스 와이어_
2070x250xh2010x90mm.

 

 

 

Q. 그런데 왜 하필 나무였을까요?

A. 광고 일을 그만두고 나서 등산을 자주 다녔어요. 산을 타다 보면 나무뿌리도 보이고, 오래된 나무 덩어리도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 안에는 사계절이 담긴 듯한 아름다움이 있었어요.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다웠어요. 특히 썩어서 쓰러진 나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의 결과 디테일이 시간이 더해져 정말 멋지더군요. 아마도 그게 제가 나무를 만지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나무’란 어떤 존재인지요.

A. 나무는 산이든 어디든 뿌리를 내리고, 수분과 양분을 흡수하며 생명을 유지하죠. 그런데 지금 제가 다루는 나무들은 이미 뿌리도, 물도, 영양도 끊긴 상태예요. 일반적으로는 그런 나무를 ‘죽은 나무’라고 부르지만, 목재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무는 죽는 법이 없습니다. 뿌리가 끊겨도, 그 순간부터는 수분을 증발시키며 다른 방식으로 생을 이어가요. 우드 슬랩을 테이블쏘로 절단할 때가 있는데, 나무가 톱날을 꽉 움켜쥐는 경우가 있습니다. 톱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요. 내부에 에너지가 응축되어 틀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가 반응하는 겁니다. 그럴 때마다 이 나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걸 느껴요.
100년, 200년을 살아온 나무에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것, 그렇게 해서 500년, 1000년을 더 살아가게 하는 것이 제 목표에요. 저는 그게 나무를 가장 오래 살리는 방식이라고 믿습니다. 나무는 끝난 게 아니라, 지금부터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거죠.

 

 

△ 열한 살, 그때의 기억 2023(Eleven years old, memories of that time 2023)_300여 년 자란 삼나무의
290년전 11살 시절을 찾아 조각_600x1890x45mm.

 

 

 

Q. 끝으로, 작가님은 앞으로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으신지요.

A. 하…, 참 어려운 질문인데요. ‘좋은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은 분명히 있어요.
제가 이렇게 노동 중심의 작업을 고집하는 이유는, ‘들키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요령 부리는 작업, 감각만으로 채운 작품은 결국 사람들에게 들키게 돼요. 광고 일을 오래 하며 많은 감각과 경험을 쌓았지만, 그런 걸로 쉽게 작업을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더욱 나이를 먹고 시작했기 때문에 진심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작품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죠. 하지만 작업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누구에게도 의심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제 작업을 ‘태도 미술’이라 부릅니다. 지난 10년 동안 거의 흐트러짐 없이 같은 루틴으로 작업해 왔어요. 코로나 시기에도 백신을 맞을 필요가 없을 만큼, 철저하게 은둔하며 작업에만 몰두했습니다. 그 생활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요.
제 작업을 음악이나 스포츠에 비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너무 쉽게 하면 “이건 나도 하겠다”는 말을 듣게 돼요. 그래서 전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곳까지 가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작가는 예쁜 그림, 어떤 작가는 무거운 그림, 또 어떤 작가는 아주 가벼운 작업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작품인지 아닌지로 나뉩니다. 전 여기에 ‘대단함’을 얹고 싶어요. 대단함은 그 작가의 시간이 투영될 때 나오는 감탄이라고 생각해요. 그 두 가지를 저는 같이 가져가고 싶네요. 

 

수축과 팽창사이 2022(between contraction and expansion 2022)_아프로모시아, 화강암, 철.

 

 

주명한 작가

이메일 herez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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