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무로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국가무형유산 두석장 · 서울특별시 무형유산 칠장 이수자 김중태

작성자최고관리자

등록일2025-12-27

조회수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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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아마추어로 살 수 없잖아요”

국가무형유산 두석장 이수자 · 서울특별시 무형유산 칠장 이수자 김중태

 

38년 교직을 마친 김중태 작가는 재직 시절부터 열쇠공방 생활을 이어가며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했다. 그가 오랜 시간 준비한 은퇴 후 삶은 실로 현역 때만큼이나 바쁘다. 
그는 이제 국가무형유산 두석장 이수자이자 서울시 무형유산 칠장 이수자이다. 이수자 자격 취득은 아마추어를 벗어나 프로가 되기 위한 선택이었다. 문화유산 복원작업에 참여해 갑옷과 인장함을 되살렸고, 경복궁과 창경궁에는 장석과 두석장 협업의 트레이를 납품하며 실력을 입증했다. 도제교육의 틀을 깨기 위해 전주 국립무형유산원 창의공방도 거쳤다. 작가 레지던시 과정은 제품이 아닌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인터뷰 당일에도 그는 320만 원짜리 기계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쇠공방에서 시작한 아마추어가 국가가 관리하는 장인이 되기까지, 김중태 작가를 만났다.

글 | 인테리어 전문기자 장영남 jekyll13@naver.com

 

 

△ 국가무형유산 두석장 이수자 · 서울특별시 무형유산 칠장 이수자 김중태.

 

 

1. 정년 이후, 다시 장인의 길 -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Q1. 38년 교직을 마치고 왕송공방을 열며 본격적인 장인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던 이 선택에는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요. 

A. 공방 활동을 오래 했어요. ‘열쇠공방’이라고 아세요? 여러 명이 돈을 내서 공간과 기계를 공유하지만 각자 열쇠는 따로 갖고 있다고 해서 열쇠공방이라고 불러요. 아마추어들이 주로 이용해요. 저는 무형유산 소목장 박명배 선생님의 용인공방부터 미사리, 남양주 공방까지 약 15년을 열쇠공방에서 작업했어요.
근데 어느 날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퇴직 후 30년을 지금과 같은 아마추어 방식으로 버틸 수 있을까?’, ‘내가 만든 가구가 언제까지 팔릴까?’라는 의문점이 들었어요. 작업물이 어딘가 소비가 돼야 하고, 현금화가 되는 과정을 거쳐야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데 말이에요.
인생을 아마추어로 살 수는 없잖아요. 그럼, 프로가 돼야 하는데, 소목 쪽은 길이 막혀 있었어요. 다행히 그때 KOUS(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장석반을 다니고 있었고, 국가무형유산 두석장 박문열 선생님께 제자로 받아 달라고 조심스레 부탁드렸어요. 선생님은 어렵사리 “그럼 너 해봐라”라고 짧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두석장 이수자 과정을 밟게 되었어요.    

△ 소목장 박명배 선생님과 함께.

 

 

Q2. 이수자가 되는 건 작가님께 어떤 의미였어요.

A. 타이틀이 필요했어요. 나를 공식적으로 인정해 줄 만한 게 있어야 해요. 우리나라에서 타이틀은 무섭잖아요. 이수자가 됐다는 건, 아마추어에서 프로의 세계로 입문했다는 의미이며 국가가 관리하는 장인이라는 뜻이에요. 
제가 서울시교육연수원에서 13년째 목공예 강사를 하고 있어요. 거기서 선생님들께 항상 하는 얘기가 있어요. “앞으로 선생님들은 직업 하나를 더 가지고 살아야 된다”라고요. 교사 출신 퇴직자들의 평균 연금 수령 기간이 8년밖에 안 돼요. 70을 못 넘기고 많이들 돌아가시기 때문이에요. 평생을 선생님으로 살아서 학생들 가르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거든요. 삶에 대한 애착이나 살아가는 이유를 못 찾으니 오래 못 사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했어요. 그 과정 중 하나가 이수자였던 거예요.
 

 


2. 소목에서 두석장·칠장까지 – 한 분야로 멈추지 않는다
Q3. 소목에서 두석장으로, 다시 옻칠까지 밟은 흐름이 인상적이에요. 하나의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영역을 계속 확장한 이유는 뭔지 말씀해 주세요. 

A. 두석을 배우다 보니까 금속에 대한 이해가 생겼고 자연스럽게 금속에 옻칠까지 하고 싶어 졌어요. 목가구에서 장석과 옻칠이 가구 전체 인상을 결정하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서 1%가 부족하면 전체가 무너지는 거예요. 가구 완성도를 높이고 싶었어요. 기존의 것들을 응용한 나만의 표현 방식을 쓰고 싶었어요. 얼마 전 옻칠전에서 두석장 이수자로 나전 대신 백동을 쓴 작품을 선보였는데, 호기심 있게 보는 분들이 많았어요. 이게 첫 출발이에요. 더 확장해 가야겠죠.  
금속에 옻칠하는 작가, 그게 저의 목표였고 그런 작품들을 디자인하고 제작하고 있어요. 제 작품을 보면서 누군가가 “옻칠은 누가 했어요?”라고 물으면, 그 순간 이 작업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것 같고요. 그게 싫었어요. 명함을 내밀 때 두석장 이수자이자, 칠장 이수자라고 말할 수 있어야  그제야 비로소 내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거잖아요.

△ 강화반닫이 부분_ 옻칠 경계 넘어_판넬에 옻칠_백동_260x705x40.  

 

 

3. 제품이 아닌 작품을 만드는 법 - 전주 국립유산원 창의공방의 혹독한 훈련
Q4.  올해 창의공방도 수료하셨다고요. 창의공방에서는 어떤 걸 배우셨나요?

A. 무형유산 이수자는 도제교육을 통해 완성돼요. 선생님의 습관, 기침 소리까지 그대로 습득하는 거거든요. 문제는 그렇게만 배우면 머리가 굳어진다는 거예요. “이건 이래야 되고, 저건 저래야 된다”는 틀 안에 갇히게 돼요.
창의공방은 그 틀을 깨부수는 곳이에요. 일주일에 최소 3일 이상, 50일을 채워야 하는데, 저는 54일을 했어요. 정해진 기간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고,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작품 스토리를 설명도 할 수 있어야 해요. 50여 일 간 계속 디자인하고 글을 쓰고 모여서 발표해요. 그 과정에서 절반 가까이는 계속 딱지를 맞습니다. 제품은 기준 규격에 따라 만드는 거고, 작품은 작가의 생각을 표현하는 거잖아요? 결국 스토리를 가지고 자기 작품을 만들게 유도하는 거예요.
처음엔 이런 과정이 불편했어요. 근데 그 과정을 버티고 나니까 확실히 달라지더라고요. 제품을 만들던 사람이 작품을 만드는 사람 쪽으로 옮겨온 거예요.

 

△ 작품에 사용되는 못 제작.

 

 

4. 궁궐·박물관 유물 복원 작업 – 옛것을 복원하며 배우다
Q5. 서울대박물관의 문화유산 복원 작업에 참여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복원 작업은 창작 작업과 무엇이 다른가요. 

A. 작년(2024년)에 서울대박물관 소장 유물 복원수리에 참여했어요. 갑옷, 갑옷 보관함, 투구를 복원했죠. 올해는 인장함, 의자 세트의 다리 부분 금속을 복원했고요. 복원과 창작의 가장 큰 차이는 개입 방식이에요. 복원은 옛날에 있던 그 모습 그대로 재현하는 작업이고, 창작은 내 생각을 보태는 것이고요.
옛날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려면 지금은 쓰지 않는 기법을 익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왜 옛날 장인들은 이렇게 했을까’를 고민하게 돼요. 그러다 보면, 그것이 만들어진 이유와 맥락까지 이해하게 되죠. 이렇게 습득한 기법을 작품에도 적용할 수 있으니까, 복원 작업은 작품 역량을 키우는 또 다른 공부이기도 해요. 

 

 


Q6. 경복궁과 창경궁에도 이수자 자격으로 장석과 트레이를 납품 하셨던데요.  

올해 두석장 이수자 자격으로 창경궁의 경상(일반 대중 대상의 행사용 경상) 제작에 참여해 장석 9세트를 납품했고, 경복궁 생과방에는 두석장 트레이 30세트를 납품했어요. 
소목과 두석은 역할이 분명해 소목장이 만든 경상에 사용할 장석을 두석장이 만들어 결합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이뤄져요. 생과방은 과거 왕들의 간식을 준비하던 곳이에요. 지금은 시민들이 차를 마시며 문화를 체험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어요. 창경궁과 경복궁 작업은 모두 공개 공모를 거쳐 참여하게 되었어요. 정말 유익한 작업이었어요. 
 

△ 창경궁 경상 장석 셋트_황동.

 

 

5. 나무를 대하는 기준과 시선 – 설계가 수정을 결정한다
Q7. 작업에 사용할 목재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기준은 뭔가요. 작가님이 특히 애착을 갖는 수종이나 질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A. 특별히 좋아하는 나무는 없어요. 반닫이든, 장이든, 함이든 설계하고 나면 ‘이 가구에는 이 나무의 이런 무늬가 필요하다’라고 딱 답이 나와요. 가구의 크기와 구조에 따라서 어울리는 무늬가 있고 어울리는 수종이 있어요. 그걸 고려해서 종합적으로 선택해야 해요. 실제로 가지고 있는 나무 안에서 디자인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아요. 디자인 먼저 해놓고 나무 찾으면 없는 경우가 더 많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철칙이 있어요. 팔릴 수 있는 걸 만드는 거예요. 만들었는데 아무도 안 사간다? 그건 그냥 자기만족이에요. 작업할 때 제 기준은 그거예요. 누군가가 살 수 있는 것, 사지 않으면 안 되는 작품을 내놓는 것. 
 

△ 나주반닫이_마음이 향기를 담다_거멍쇠장석_느티나무_680x395x490_유칠. 

 

 

6. 넘쳐나야 배움이 일어난다 - 교육과 장인의 평행이론

Q8. 작가님의 작업 방식에는 ‘사진적 시각’이 녹아 있는데, 그게 무슨 뜻인가요.

A. 고등학교 사진영상과에서 사진을 오래 가르쳤어요. 사람들이 사진을 단순히 셔터를 누르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진은 피사체가 가진 에너지를 ‘채집’하는 거예요. 그냥 찍는 게 아니에요.
길을 가다 가도 관찰하고, 보고, 생각하고, 필요하면 찍어요. 채집이라고 하죠. 그것이 하나하나 쌓이면 자기 역량이 돼요. 응축된 서사가 충만한 사진 한 장이 타인에게 말을 걸듯, 사진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 모든 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Q9. 그런 시각이 결국 좋은 가르침, 좋은 작품으로도 이어지는 걸까요.

A. 맞아요. 처음 교사 발령을 받았을 때 쓴 글의 제목이 ‘가르칠 것인가, 배우게 할 것인가’였어요. 선생이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들면 안 돼요. 제자들이 선생님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고 스스로 배울 수 있게 해야 해요. 그러려면 제가 커져 있어야 해요. 내 능력이 차고 넘쳐서 아이들이 그것을 온몸으로 느껴야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요.
작품도 똑같아요. 작품이 사람들에게 팔리게 하려면, 그 작품 역시 에너지가 넘쳐나야 해요. 작품 스스로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가치가 밖으로 절로 풍겨 나와야 해요.  

 

 

 

7. 전통가구의 미래 – 현대 생활 속으로
Q10. 오늘날 아파트 중심의 주거환경 속에서 조선시대 전통가구는 어떤 방식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보세요.

A. 전통가구를 그대로 들여놓을 순 없죠.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해요. 크기를 줄이든, 용도를 바꾸든, 외관을 변형하든, 지금 사람들이 사는 방식에 맞게 만들어 체화되도록 해야 해요. 그래야 자기 옆에 두거든요. 제작자의 시각이 아닌 사용자의 편의를 더 많이 고려해야 해요. 어떻게 하면 사용자가 더 편안하고 유용하게 쓸 수 있을까? 이것만 생각하면 됩니다.

 

 

 

8.  끝을 보는 장인 – 95살까지 망치를 들겠다
Q11.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요. 

A. 내년에는 국립무형유산원 문화재 복원과 재현 과정에 들어갈 계획이에요. 그곳에서는 박물관장이나 학예사들이 유물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가르쳐줘요.  
그리고 이르면 내년, 늦어도 수년 내에 개인전을 할 거예요. 작가는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품이 있어야 해요. 서울특별시 무형유산 칠장 손대현 선생님 말씀처럼, 작가는 말이 필요 없어요. 작품이 나를 얘기해 주는 거예요. 내 이야기를 대변해 주는 작품을 만들어낼 때 작가로서 인정받는 겁니다. 95살까지 일할 거예요. 현역에서 뚱땅거리고 망치질하려고요.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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