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무로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제주 목공 생태계 만드는 레진우드 정영선 대표

작성자최고관리자

등록일2026-02-25

조회수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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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 혼자 아닌, 잘 짜인 톱니바퀴처럼
제주 목공 생태계 만드는 레진우드 정영선 대표

 

“제주에는 월넛 한 장을 살 곳이 없었어요.”
정영선 대표는 이 불편함을 혼자만의 문제로 두지 않았다. 대량으로 목재를 확보해 주변 공방과 나눴고, 프로젝트를 협업으로 풀어냈다. 2018년 창업 당시 작은 목공방이었던 레진우드가 이제는 단열·바닥재·목재·DIY 키트·레진까지 아우르는 제주 목공인들의 협업 거점이 되었다. 제주, 섬에서도 필요한 것을 나누며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구조 만들기에 뜻을 품고 있는 젊은 목수의 상생기(相生記)를 들어본다. 

글 | 인테리어 전문기자 장영남 jekyll13@naver.com

사진 및 사진편집 | 레진우드

 

 

Part 1. 무엇이든 뚝딱 고치는 아버지를 보고 자라며

Q1. 건축과를 졸업하고, 인테리어-목창호-목조주택-목공으로 이어지는 궤적을 보면 ‘목재’라는 재료에 대한 일관된 태도가 느껴집니다. 이 흐름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요. 

A1. 1981년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무엇이든 혼자서 뚝딱뚝딱 고치시던 아버지 모습을 보며 자랐죠. 아버지께서 주로 사용하신 재료가 나무였어요. 가장 구하기 쉽고 가장 가공하기도 쉽고요. 나무라는 소재에 대한 익숙함, 친숙함, 그리고 ‘애정’이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아버지처럼 나무를 가지고 스스로 생각하며 뭔가를 만드는 것도 자연스러워지고요. 
저의 이력을 보시면, 점점 나무가 주재료가 돼요. 목공은 우리가 나무를 손끝으로 느끼고 매일 마주하는 일상 속 작품을 만드는 일이에요. 목조주택이 구조재로 ‘쓰는’ 것이라면, 목공은 나무 고유의 물성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일이죠. 결국 제 이력은 나무라는 재료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며 다루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Q2. 제주 토착민은 아니시죠? 제주에 살게 된 계기는요.

A1. 목창호 관련 회사 중국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2016년 귀국해 늘 꿈꿔왔던 제주도에 정착했어요. 인생 2막은 제주에서 시작하고 싶어서 무작정 들어온 거에요.
처음 6개월은 제주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쉬었어요. 그러다 무료해질 즈음, 평생 살 집은 내 손으로 직접 짓고 싶다는 생각에 목조주택을 배웠어요. 수익보다는 ‘집은 어떻게 지어질까’라는 배움 자체가 목적이어서 그 갈증이 해소되는 시점에 두 번째로 꿈꿨던 ‘목공’을 시작했어요. 

 

 

Part 2. 레진우드, 해외 유튜브에서만 보던 걸 국내 처음으로

Q3. 2018년 창업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레진 작업은 생소했습니다. 왜 ‘레진우드’였는지요.

A3. 아이가 태어나고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 이젠 목공을 생업형으로 전환해야 했어요. 
제주에는 한 동네에 못 해도 목공방이 하나씩 있을 정도로 흔했어요. 이방인인 제가 일반적인 목공방 형태로 경쟁한다는 건 쉽지 않았어요.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해외 유튜브에서나 보던 ‘레진(Resin)’ 작업이었어요. 
시행착오도 정말 많았어요. 그렇지만 “한번 시작하면 3년은 해봐야 한다”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 말씀을 되새기며 버텼죠. 다행히 업계의 많은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데요.
저와 다양한 사업을 같이 하시는 퓨어크리스탈레진 대표님, 한국아트크래프트 협회분들, 그리고 저의 멘토가 되어 주시는 쇳덩이의 나무이야기 대표님께 깊은 감사 드려요. 또 늘 최상의 목재를 챙겨주시는 죽산목공소와 서해목재, 목재에 대한 배움의 장을 열어 주시는 우드포럼 관계자분들께도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 전하고 싶네요.

 

레진우드 정영선 대표

 

 

Q4. 공방은 그간 어떻게 운영되어 왔는지 말씀해 주세요.

A4. 업계의 여러분들을 만나며 도움받는 사이, 저희 공방이 정말 다양한 주문 제작 제품과 작품들을 만들고 있더라고요. 
처음 청소년 문화센터에서 목공 수업을 진행하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어느새 도교육청 세미나까지 맡게 되었어요. 도내 도서관과 학교에 책상, 진열장 등을 납품하는 프로젝트에도 다른 공방들과 함께 참여하고요. 
물량이 늘어나면서 CNC 장비도 도입했어요. CNC는 정밀 가공과 대량생산이 가능해서 직원 한 명 이상의 몫을 해내요. 관급 공사나 학교에서 들어오는 100개, 200개 단위의 물량은 수작업만으로는 힘들거든요. CNC로 1차 가공해서 다른 공방에 공급하는 작업도 하고 있어요. 

 

 

Q5. 가구는 어떤가요. 대표님께서 추구하는 작품의 지향점은 무엇이며, 그 안에서 레진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요. 

A5. 가구는 받으시는 분이 애착을 가지고 오래오래 쓸 수 있게, 최대한의 퀄리티로 만드는 걸 좋아해요. 제 가구를 쓰는 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만들고 아들이 사용하고, 그 아들이 커서 손주가 또 같이 사용하는 ‘대를 이어 쓰는 가구’를 만들고 싶어요. 
레진은 이런 가구를 만드는 데 좋은 재료예요. 곰삭거나 갈라져 버려지는 나무에 레진 작업이 더해지면 새로운 가치를 갖게 돼요. 나무마다 가진 고유한 곡선과 결을 면밀히 살피고 그 특성과 가장 잘 어우러지는 레진의 컬러와 펄의 농도, 질감 등을 설계하는데, 이런 작업을 거치면 가공하기 어려웠던 나무가 예술성이 높은 가구로 다시 태어나요. 


 

 


Part 3. 상생: 혼자가 아닌, 잘 짜인 톱니바퀴처럼

Q6. 제주에서 목공방을 운영하며 가장 크게 체감한 제약이나 벽은 무엇이었는지요.

A6. 그때그때 필요한 목재를 구매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에요. 물론 제주에도 많은 목재상이 있지만, 가구용이 아닌 건축용 구조재 위주로 유통되고 있었어요. 월넛 한 장, 오크 한 장을 사고 싶어도 살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 그런데 주변 공방들과 협업하며 이야기를 나눠보니 모두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일단 제가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이 사서 물량을 확보해 뒀어요. 10개가 필요하면 100개를 주문해 재고를 넉넉히 쌓아 뒀죠. 제가 쓰기도 하고 주변 공방에 필요한 만큼 나누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저도 단가를 낮춰서 좋고, 주변 분들도 필요한 자재를 바로 살 수 있어 좋고요. 그러다 보니 소문이 나고요. 자연스럽게 선순환하는 구조가 만들어졌어요. 

 

 

Q7. 목재 유통이 판매를 넘어, 지역 목공 생태계 구축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큰 프로젝트를 항상 주변 공방들과 ‘협업’으로 진행하시는 이유도 궁금해요.

A7. 혼자 작업하는 것보다 완성도가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에요. 공방마다 특화된 강점이 있어요. 이걸 살려 역할을 나누면 퀄리티는 물론, 공기 또한 정확히 맞출 수 있어요. 혼자일 때 놓치기 쉬운 부분까지 잡아내고요. 굉장히 잘 짜인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요. 

 

 

Q8. 협업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주변 공방들과 협업하면서 작업의 질과 방향, 삶의 방식에는 어떤 차이가 생겼는지요.

A8. 계산기만 두드려보면, 이득이 아닐 수도 있어요. 이익분배 문제도 애매하고요.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깨달은 것은, 이게 절대 손해가 아니라는 거예요.
협업하면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어요. 제 일정이 빠듯해도 같이하면 가능해지거든요.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거예요. 오히려 각 분야에 특화된 공방들이 모이니까 전문성을 어필할 수 있고요.   
그리고 시간적 여유도 생겨요. 책도 읽고, 블로그도 쓰고, 우드포럼 강의도 들을 수 있죠. 혼자 했으면, 작업에만 매몰되어 있었을 거예요. 그러다 지쳐 번아웃이 오고 이 일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었을 테고요. 
무엇보다 같이 하면 즐거워요. 서로 대화하며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혼자 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협업의 가치인 것 같아요.

 

도서관 서가 프로젝트 (좌측부터 서귀포목공방해목 / 혜공방 / 나무공방쉐돈 / 레진우드)

 

 

Q9. 레진우드 아카데미의 교육 파트도 지인에게 맡기셨다고요. 이 결정은 공방 운영에 어떤 변화를 불러왔는지요.

A9. 사회에서 만난 그 지인이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는데요. 워낙 성격이 밝고 조리 있게 말을 잘해, 제가 진행하던 목공 수업 노하우를 전수하고 레진우드 아카데미도 승계했어요. 지금은 ‘해목’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데, 제주에서 제일 잘 나가는 목공체험 교육 공방이 됐어요.
교육에선 물러났지만, 수업에 필요한 재료의 밑작업이나 난이도 높은 가공처럼 전문적인 퀄리티가 필요한 부분은 저희 공방의 장비들로 1차 가공해주고 있어요. 교육에 전념하는 강사분들이 고가의 전문 설비까지 직접 갖추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거든요. 서로 윈윈하는 시스템이에요. 제가 모든 걸 다 하려 했다면, 지금까지의 성장은 불가능했을 거예요.

 

 

 

Part 4. 제주 목공 생태계를 꿈꾸다

Q10. 2025년 강정동으로 이전하며 공방 환경에 파격적인 투자를 하셨던데, 이전한 공방은 이전 공간과 비교해 규모나 설비 면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요.

A10. 강정동으로 이전하면서 정부 지원사업도 적극 활용했고, 장비도 100% 업그레이드했어요. 더 안전하고, 조용하고, 빠른 작업 환경을 구축하는 데 신경 썼어요.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먼지 없는 공방’이에요. 목공방에서 가장 취약한 점이 바로 톱밥 먼지인데, 이건 작업자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거든요. 몸이 곧 재산이라는 생각으로 집진 시설에 과감히 투자했죠. 지금 우리 공방 바닥에는 먼지 하나 없이, 늘 쾌적하고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어요.

 

 

Q11. 장기적으로는 레진우드라는 이름이 어떤 상태로 기억되길 바라시는지요.

A11. 현재 레진우드는 단일 공방을 넘어 여러 사업을 운영하고 있어요. 건축물 단열 솔루션을 제공하는 ‘히트폼 단열 사업부’, 한국아트그라운드와 함께하는 레진을 이용한 ‘아트바닥 사업부’, ‘특수목 유통사업부’, ‘학교 및 단체 체험용 DIY 키트 사업부’,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에 부합하는 위생 바닥재 시공의 ‘크리트 사업부’, 그리고 퓨어크리스탈레진 제주 대리점과 루비오 모노코트 제주 대리점, 조광 페인트 제주 대리점까지요.
그런데 전체적으로 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제주라는 지리적 특성상 구하기 힘들거나 육지 인력에 의존해야 했던 것들이에요.  
제가 꿈꾸는 레진우드는 제주에서도 누구나 질 좋은 나무를 편하게 사고, 목공을 취미로 즐기는 분들이 언제든 필요한 자재를 구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저 또한 그 안에서 누군가에게 행복을 전하는 작품 활동에 정진할 것이고요. 
제주라는 환경에 고립되지 않고 모두가 필요한 것을 나누며 협업 속에서 즐겁게 일하는 생태계, 그 자생적인 목공 생태계의 중심에 ‘레진우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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