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취미도 직업처럼 했더니만, 인피니티우드 송승원 대표
작성자최고관리자
등록일2026-05-27
조회수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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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취미도 직업처럼 했더니만
말년이 신명나는 인피니티우드 송승원 대표
뭐든 빠져들면 끝을 봐야 하는 사람이었다. 낚시를 시작하면 낚싯대를 직접 만들고, 무전기를 잡으면 안테나를 설계했다. 그 모든 몰입의 시간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지금을 그에게 선물처럼 안겨줬다. 나무와 조명, 돌과 철로 세상에 하나뿐인 작업을 고집하며 오늘도 손끝 마감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인피니티우드(Infinity Wood) 송승원 대표와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글 | 인테리어 전문기자 장영남 jekyll13@naver.com
전공자라는 타이틀 없이 홀로 걸어온 30년의 시간이 빛을 발하는 날이었다.
CHAPTER 1. 제작본능과 나무, 그리고 30년
Q1. 나무를 처음으로 ‘소재’로 인식하게 된 건 어떤 계기에서였습니까.
송승원 대표: 취미로 클라이밍을 했는데,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니까 혼자 산에 갈 수가 없더라고요. 가족과 강가로 캠핑하러 다니다가 낚시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저는 뭐든 하나 빠져들면 끝을 봐야 하는 타입이에요. 우리나라 전통 민물낚시인 견지낚시를 했는데, 고기를 더 잘 잡고 싶어서 낚싯대를 직접 만들었어요.
낚싯대 손잡이에는 단면이 병아리처럼 노란 황벽나무 껍질을 써요. 이게 천연 코르크라서 그립감이 기가 막히거든요. 낚싯대 끝부분에도 나무를 깎아 마감하다 보니까 목선반을 들여놓게 됐어요. 그런데 그 목선반으로 우드펜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낚싯대를 만들면서 참고했던 일본 서적에 우드펜도 함께 소개돼 있었거든요. 눈이 번쩍 뜨였죠.
오래전부터 손으로 내가 뭔가를 만들 때 그 한계가 어디까지일까가 되게 궁금했어요. 초등학교 때도 썰매, 새총 같은 걸 만들어서 동네 애들한테 팔 정도였으니까요. 저희 아버지가 또 대단하신 분이셨어요. 칼 하나만 가지고 ‘다보탑’이며’ 거북선’을 만드셨는데, 그 유품을 지금도 제가 소중히 보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손재주를 반만이라도 따라갔어도 명장 소리를 들었을 텐데”하는 생각을 지금도 해요.
Q2. 2000년대면 우드펜이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텐데, 완성도는 어떠했고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송승원 대표: 그때는 인터넷 검색으로 정보를 찾기도 어려웠어요. 열 명 남짓, 전국에서 낚싯대 만드는 사람들이 모였고 그중에 마침 영어를 잘하는 분이 계셔서 함께 외국 서적을 보면서 공부했죠. 배럴(Barrel)은 직접 깎아 만들고, 내부 부품은 미국에서 수입해 완성했어요. 몽블랑 써본 분 중에는 우드펜 느낌이 더 좋다고 하는 분이 많았어요.
그 시절에 만든 우드펜만 1,000 자루가 넘을 거예요. 낚싯대도 1,000 대가 넘게 만들었는데 말이죠. 만든 작업물들을 목공 커뮤니티나 제가 직접 운영하던 다음 카페(멋쟁이네 작은 세상)에 올렸어요.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아서 구매처나 만드는 방법을 물어오면 다 알려줬지요.
큰아이 대학 입학쯤엔 남양주시의회에 우드펜 150자루를 케이스까지 만들어 납품했고, 그 돈으로 입학금을 냈어요. 낚싯대도 그랬어요. 낚시점에서 전문 수제품으로 유통될 정도로 퀄리티를 인정받았죠.
CHAPTER 2. 최고급 나무로 전국의 승강기를 꾸미다
Q3. 백화점, 호텔 등 승강기 인테리어 작업을 전국 규모로 하셨습니다. 승강기에는 어떤 목재가 어떻게 사용됩니까.
송승원 대표: 승강기는 불특정 다수가 매일 탑승하고 접촉하는 매우 좁고 폐쇄적인 공간이에요. 내구성과 미감이 동시에 확보되어야 하죠. 나무로 벽을 마감할 때는 ‘쌈질’이라는 기법을 썼어요. 얇은 무늬목이 아닌 3~5mm 두께의 두툼한 원목 단판을 붙이는데, 쌈질은 악기 제작에도 쓰이는 기법이에요. 무늬목과는 차원이 다른 고급스러움이 특징이죠. 탑승객의 손이 가장 많이 닿는 손잡이에는 월넛, 코코볼같은 최고급 하드우드를 솔리드로 넣었고요.
나무 무늬를 맞추는 북매칭 작업도 많이 했어요. 얇게 켠 원목들을 책을 펼치듯 펼쳐 좌우 대칭을 맞춰가는데, 그 무늬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도록 배열하는 과정이 정말 까다로워요. 한 대 작업하는 데 보통 한 달 정도가 걸려요. 작업이 어려운 만큼 완성되면 느낌이 확실히 달라요.
백화점, 호텔 등 전국의 고급 승강기를 이런 방식으로 꾸몄다.
남들이 술자리로 향할 때, 그는 일본과 미국에서 사온 목공 서적을 펼쳤다.
Q4. 승강기 목재 마감만 한 달 걸릴 정도면 장기 출장으로 이어졌을 텐데, 이때 목공은 어떻게 이어갔는지요.
송승원 대표: 승강기 작업을 한참 할 때 지방에 출장 가면, 일주일, 열흘, 길게는 보름씩 머무는 일이 허다했어요. 남들은 일 끝나면 술 마시러 갔어요.
그런데 저는 술을 못 마셔요. 체질적으로 알코올이 안 받거든요. 모텔에 혼자 남아서 일본이나 미국에서 사 온 목공 서적을 펼쳐놓고 탐독했어요. 그림과 도면을 자세히 보다 보면 작업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지거든요.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직접 만들어보고요. 남들이 술 마시는 시간을 저는 그렇게 썼습니다.
CHAPTER 3. 고사목과 빛
Q5. 목공을 정식으로 전공을 하지 않으셨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런 시선들을 어떻게 극복했고, 왜 하필 ‘조명 목공예’에 집중하게 되었는지요.
송승원 대표: 제가 어디 가서 정식으로 목공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이름난 장인 밑에서 수년간 도수 생활을 한 게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 소위 ‘전공자’라는 사람들이 은근히 무시하더라고요. 전통 수공구 쓰는 법을 제대로 배워보려고 유명하다는 공방을 찾아가 수강증을 끊기도 했어요.
그러나 남들이 만드는 것과 똑같은 걸 아무리 꼼꼼하게 잘 만들어봤자, 사람들은 결국 전공자의 손을 들어준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뭔가 다른 걸 찾으려고 해외 유튜브나 사이트들을 보는데, 조명 쪽으로 눈이 갔어요. 독특하게 만들어진 조명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고사목이 품어온 시간을 그대로 살리고, 그 안에 빛을 심었다.
제가 추구하는 조명 작업에서는 소재가 중요했어요. 처음에는 고재를 썼는데 고사목에도 끌렸어요. 고사목은 형태가 멈춰 있잖아요. 제가 인위적으로 손대지 않아도 세월이 만들어 놓은 형태가 이미 있어요. 특히 심재가 남아 있는 고사목은 정말 멋있어요. 태백산 쪽 주목(朱木)은 심재가 오롯이 살아있어서 그 자체가 작품이에요. 이런 소재가 빛을 만나면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내요.
2017년부터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에 출품을 시작했고, 결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까지 받았어요. 수상작 이름이 <세월의 흔적>이에요. 이게 제 나름대로 저를 증명하는 방식이었어요.
그 무렵 우드 아카데미를 알게 됐어요. 혼자 독학해온 터라 이론에 대한 갈망이 있었거든요. 정연집 박사님 수업을 들으면서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어요. 박사님은 늘 "너무 좋은데 왜 이렇게 안 알려져 있냐"며 안타까워하셨어요. 그런 박사님께서 나중에 제 호도 지어주셨어요. '오직 나무(惟木)', 유목이에요. 지금 딸아이 카페 이름이기도 하죠.
Q6. ‘나뭇가지 조명’에 들어가는 전기기술은 매우 정밀해 보입니다. 까다로운 전기 지식은 또 어떻게 습득하셨습니까.
송승원 대표: 결혼하자마자 빠져든 취미가 아마추어 무선 햄(HAM)이었어요. 무전기로 전 세계 사람들과 교신하는 것 말이에요.
신호를 더 멀리, 더 깨끗하게 보내고 싶어서 안테나를 직접 만들었어요. 그러려면 전기와 전자 지식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걸 독학한 거예요. 만든 안테나가 신호가 잘 잡히고 멀리 가니까 동호인들에게 팔기도 했어요. 할리 오토바이를 타면서는 전기 장치를 직접 튜닝했고요. 이 두 가지 취미가 조명 작업에 그대로 쓰이고 있는 거예요.


오늘 만든 것과 내일 만든 것이 같을 수 없는 세상에 하나뿐인 조명이 된다.
Q7. 낚싯대, 우드펜에 이어 무선 햄 안테나까지 인상적인 것은 일반적인 취미수준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더구나 조명은 취미가 아닌 본업 타이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송승원 대표: 유일성이에요. 기계로 만든 가구는 A가 만들든 B가 만들든 비슷해요. 그런데 나뭇가지를 소재로 쓰면 오늘 만든 것과 내일 만든 것이 같을 수 없어요. 세상에 같은 형태가 단 하나도 없는 조명, 저는 그 유일무이함에 미친 거예요.
CHAPTER 4. 십자가에 담긴 나무 예술
Q8. 최근 조명 기능이 있는 대형 십자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셨다고요. 어떻게 일이 성사된 건지 진행 과정을 들려주세요.
송승원 대표: 의왕시에 있는 교회 목사님이 블로그와 인스타를 보고 찾아오셨어요. 십자가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고 솔직히 말씀드리니까, 참고할 만한 자료를 보여주시더라고요. 자연스럽게 굽어진 형태의 십자가들이었어요.
“여기에 조명을 넣으면 예쁘겠네요”라고 제안했고 목사님도 흔쾌히 승낙하셨어요. 완성된 십자가를 보신 목사님은 “기대를 100으로 잡았는데, 1000이 나왔다”며 감탄하셨어요. 그 자리에서 바로 외부 설치용 십자가를 별도로 주문하셨어요. 실내 천장 십자가에 이어서 3m짜리 참죽나무 십자가가 옥상에도 설치된 거예요.
요즘은 법이 바뀌어 첨탑에 빨간 십자가를 올리면 안 돼요. 그러다 보니 교회들이 자기들만의 특색 있는 십자가를 원하는 거예요.

"기대를 100으로 잡았는데, 1000이 나왔다"라고 목사는 감탄해 마지 않았다.
CHAPTER 5. 작업의 현재, 더욱 ‘나’다운 삶
Q9. 해외 공모전 출품도 준비 중이시라고요.
송승원 대표: 여동생이 미국 오리곤주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데, 장사하는 친구라 그쪽 사정을 잘 알아요. 미국은 기독교인 비중이 워낙 높아서 십자가 수요 규모 자체가 다르잖아요.
여동생이 미국 공모전 서류를 준비해 주고, 제가 작품 사진을 순서대로 보내면 공모전 측에서 검토해요. 이미 “전시해도 되니 정식 출품하라”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서 올해만 네 번 정도 출품할 계획이에요.
큰 공모전에서 수상하면 영주권 신청도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영주권이 생기면 여동생을 통해 현지에서 작품을 알리고 판매하는 것도 이어갈 수 있고요.

Q10. 화성시청 인근 카페, 유목을 직접 꾸미셨던데 어떤 공간인지 말씀해주세요.
송승원 대표: 2020년에〈서민갑부> 방송에 나갔더니 전화에 불이 났어요. 공방을 찾아오는 분들에게 조명을 제대로 보여주기가 어려웠어요. 공간이 필요했죠. 작은아이에게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게 하고 카페를 열었어요. 인테리어는 혼자 다했어요. 전기공사, 수도설비, 커피기계 설치, 가구, 조명, 소품 전부요. 커피기계도 코로나 때 문 닫은 카페에 가서 사와 직접 설치했어요.
카페 오픈은 2022년 5월 8일 어버이날에 했어요. 이 공간이 저에게는 전시장이에요. 제가 살면서 치열하게 배우고 익힌 것들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에요. 실제로 손님들이 테이블이나 조명을 보고 작품을 주문하기도 하고, 인테리어 완성도를 보고 작업자를 소개해 달라고 해서 공사로 이어지기도 해요.
유목은 우드아카데미를 이끄는 정연집 박사가 지어준 송승원 대표의 호이기도 하다.
입구 벤치부터 내부 가구, 조명, 소품까지 그의 손을 거쳤다.
Q11.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보여줄 계획입니까.
송승원 대표: 돌과 나무와 철을 같이 쓰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강가에서 돌을 주워다가 십자가를 넣고, 나무와 단조로 두드린 철을 조합하는 거예요. 구리나 스테인리스 스틸도 두드려서 수작업 느낌을 내는데, 승강기 작업하면서 배운 용접기술은 또 여기서 쓰이고 있어요.
그 옛날 낚싯대를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지켜온 철칙이 하나 있어요. 제작이 10이라면 마감이 90이에요. 결국 작업의 완성도는 마지막 손끝에서 결정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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