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무로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수생헌 김현 소목장

작성자최고관리자

등록일2024-12-16

조회수 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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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과 안목은 다른 문제다_수생헌 김현 소목장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그의 작품을 보며,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인의 깊은 손맛이 느껴지는 전통가구이지만, 어딘가 모던해 21세기 효율의 공동주택에도 썩 어울리는 감도 높은 디자인이 일품이었다.  이런 가구를 만든 그는 어떤 내면을 지녔을까. 수생헌 김현 소목장을 만났다.    

글 | 장영남 인테리어 전문기자 jekyll13@naver.com

 

 

인생 2막입니다. 오랜 직장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이 길로 들어선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가 10대였던 1970년대는 먹고 살기 힘들던 때라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내가 뭘 잘하는지’ 생각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가난한 대학생도 많았고, 가정형편이 어려우면 대학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저도 적성에 관계없이 기계와 전자 분야에서 평생을 일했습니다. CEO로 활동하면서는 몸도 많이 상하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어요. 문득 “이렇게 살려고 태어난 건 아닌데….”라는 회의감이 들더군요. 

그런데, 정작 제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더라고요. 대학 시절, 고등학교 시절, 그렇게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중학생쯤 되니까 생각이 났습니다. 그게 ‘목수’였습니다.

당시 삼양동 근처에 살았는데 길음동에 있는 중학교까지 걸어 다녔습니다. 그 길이 모두 목공소였어요. 학교길이면 목공소 앞에 쭈그려 앉아서 창틀을 만들고 장롱을 만든 목수님들을 한참 바라봤습니다. 목공에 관심이 있었던 거죠. 그러면 개중에 “와서 해볼래?”라고 장난스레 말씀하시던 분도 계셨고요. 

 

△ 수생헌은 서울 종로구의 이화마을에 위치해 있다.

 


 △ 작업 중인 김현 소목장. CEO로 일하면서 몸도 많이 상했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기면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뭘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었다고.

 

    

가구도 스타일이 다양한데, 특별히 한국전통가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처음 5~6년은 동네 목공소나 목공방에서 기계 다루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뒤 지인으로부터 한국공예건축학교(KOUS)를 소개받아 전통가구 제작기법을 배웠는데, 한국전통가구 미학과 제가 추구하는 미학에 공통점이 있더군요.  

결구법이라는지 국산재로 만든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직선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단순화된 ‘미니멀리즘’을 선호합니다. 가구의 선(Line)과 형태(Form)는 단순하지만, 면(Plan)은 화려하게 채우는 방식을 추구합니다. 가구 전면을 화폭화하는 접근인데요. 틀은 직선을 따르되, 직선의 단조로움과 날카로움을 보완하기 위해 면은 곡선을 배치합니다. 이점은 일본전통가구와 한국전통가구의 차이기도 한데, 저는 이 곡선적 배치를 통해 가구에 회화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 수생헌 내부. 기존 카페였던 곳이라 아늑한 느낌이 있다.

 


△ 2층으로 향하는 작업실 계단에 보관된 다양한 수종의 우드 슬랩.

 

 

널 소재로 애용하는 수종은 어떤 것인지….

수묵화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널 소재로는 먹이 번진 듯한 느낌의 먹감나무를 많이 씁니다. 삼층장 ‘환(Illusion)’이 대표적인데, 환은 먹감나무의 목리가 더 부각되도록 가로가 아닌 세로로 배치함으로써 회화성을 강조한 점이 특징입니다. 나무의 오묘한 무늬를 바라보며 각자가 다른 느낌을 받기를 바라고 있어요.       

천재성은 타고나지만, 보는 눈 즉, 안목은 기를 수 있습니다. 직장생활할 때 주말이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자주 갔습니다. 많이 보다 보면 내면의 수용이 깊어지고 취향이 생깁니다. 회화에 대한 안목이 생겨 전통가구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삼층장_幻(환, Illusion). 느티나무, 먹감나무, 오동나무. 먹감나무를 세로 배치해 목리가 더 부각되도록 했다. 

 

 

회화작품에 대한 안목이 전통가구로 이어졌다니 흥미롭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회화작품은 어떤 걸까요.  

피카소의 게르니카입니다. 스페인 내전 중 독일군의 폭격으로 초토화된 게르니카 마을의 비극을 표현한 작품인데요. 오리지널은 아니지만 그 크기의 이미테이션을 사서 제 업무공간에 걸어 두기도 했습니다. 

 


△ 파블로 피카소_게르니카_1937년. 김현 작가는 가장 좋아하는 회화작품으로 이 작품을 꼽았다.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작가님의 작품을 보며,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히 전통가구이지만 21세기 공동주택에도 잘 어울리는 생활 속 전통가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통의 재해석에 대한 철학도 확립된 듯합니다. 

전통의 재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접근됩니다. 하나는 원형에 현대성을 가미하는 것, 다른 하나는 현대물에 전통적 요소를 차용하는 것입니다. 저는 전자입니다. 우리가 사는 집은 그리 크지 않으며 우리는 입식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효율성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미니멀리즘은 시대적 트렌드에 자리 잡았고요. 

최대한 덜어내고자 합니다. 30평형대 아파트에 놓을 수 있는 크기에 풍혈 등과 같은 장식부재를 없애 간결미를 강조합니다. 녹색, 파란색 등 널을 아예 유색 옻칠해 단순미를 드러내기도 하고요. 메커니즘을 바꿔 쓰임을 재해석하기도 하는데, 문갑이나 약장처럼 좌식생활에 맞춰진 전통가구에는 다리를 달아 입식화하고 사방탁자에는 문을 달아 개방성 대신 실용성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현재는 미래의 전통이며, 과거는 현재의 전통입니다. 작품이라 할지라도 쓰임새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목공예가 조지 나카시마(George Katsutoshi Nakashima)의 가구가 관상용이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전통가구도 과거에는 일상에서 쓰였던 생활용품입니다. 과거의 전통가구가 미래세대에게 전달되려면 21세기의 시대정신이 반영되어 쓰여야 합니다. 그 시대정신에 대한 해석은 각자마다 다를 것이고요. 좋은 시도라면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습니다. 

 


△ 삼층책장. 느티나무, 은행나무, 오동나무. 널을 단색처리해 단순미를 드러냈다.

 

△ 이층 사방탁자. 참죽나무, 오동나무. 사방탁자에 문을 달아 실용성을 높였다.


△ 콘솔_KH Console. 참죽나무, 먹감나무, 오동나무. 좌식생활에 맞춰진 문갑에 다리를 달아 입식화했다.

 

△ 콘솔_JJ Console. 느티나무, 먹감나무, 느티용목, 오동나무. 좌식생활에 맞춰진 약장에 다리를 달아 입식화했다.

 

 

작업에 어려운 점은 없으신지요.

기록물이 없다는 점입니다. 대패를 만들고 싶어도 그걸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가 없어요. 재료, 크기, 결구법, 마감처리 같은 제작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담은 문서나 제작과정을 담은 도면이 존재하지가 않아요. 이 전통의 단절은 전통가구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생활양식 전반의 현상으로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이 초래한 우리 역사의 비극입니다. 해방 이후에는 급격한 서양화로 전통은 설 자리를 찾지 못했고요. 그렇지 않았다면 신문물이 우리 것과 자연스럽게 융화되었을 겁니다.   

    


△ 수생헌 김현 소목장.

 

 

공방에서 작업하실 때 어떤 기분인지도 궁금해요. 직장생활을 했을 때와 무엇이 다른지요. 

‘공의 상태’라고 해야 할까요. 사실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구속 받지 않고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침 7시 반까지 도착해서 6시 넘어 퇴근하고 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는데, 직장생활을 했을 때처럼 최선을 다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그때는 하기 싫어도 해야 했던 게 많았고 지금은 그런 불편이 없다는 게 다릅니다. 

 

 

2022년 5월 인영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반응은 어떠했으며, 이 전시회가 후속 작업에 끼친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전시회에서 몇 가지 시도를 했고 나름대로 대중에게 어필되었습니다. 그 시도란, 앞서 말씀드린 미니멀리즘적 특성과 회화적 요소의 반영인데요. 반응이 좋았습니다. 전시 이후에는 이를 심화 발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머릿 속에 있던 가구를 만들었지만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어 6개월을 바라만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방향성을 설정하기까지 2년이 걸렸네요. 

프레임은 전통이지만 이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다듬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컸습니다. 가구보다 그림이나 회화성이 강한 공예 작품을 관심 있게 보며 영감을 얻었는데, 상명대 곽철안 교수의 작품이 그중 하나입니다. 회화의 붓 터치를 3차원 형태로 표현한 그 분의 작품들은 벽에 걸리면 평면 회화처럼 보이지만 공간에 놓이면 입체 조각으로 인식됩니다. 

근래는 회화적 요소로 널에 목리 외에 다른 걸 접목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그림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손주와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있습니다. 

 

 


△ 김현 작가는 2022년 5월 18일부터 24일까지 인영갤러리에서 '김현 목가구展'이라는 전시명으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공방명 수생헌(樹生軒)은 무슨 뜻인지요. 작가님의 삶이나 나무에 대한 자세와도 맞닿아 있을 것 같습니다.

한자어로 베어진 나무를 목(木)이라고 하고, 살아 있는 나무를 수(樹)라고 합니다. 작은 나무 한 조각도 살아 있는 것처럼 대하고 마주합니다. 인본주의, 휴머니즘의 가치관을 두고 있는데, 그 바탕은 자비입니다. 

1980년대 자동차회사에서 일하던 시절, 미국 기업가 아몬드 해머(Armand Hammer)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는 냉전시대 유일하게 스탈린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미국인이었습니다. 의사였는데 석유사업, 종마사업, 농업, 부동산, 예술 후원 등 다양한 산업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분이었죠.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낼 수 있었는지 물으니까, ‘머시(Mercy, 자비)’라고 대답했습니다. 전쟁과 혁명으로 죽어가는 소련인이 불쌍해 도왔고, 에르미타주(Hermitage) 박물관의 그림이 좋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으며, 소련의 종마가 좋아서 미국에도 소개하고 싶었다고요. 울림이 컸습니다. CEO로 활동하며 회사를 경영할 때도, 자녀들의 교육에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이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끝으로 전통가구 제작에 관심 있는 후배나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현실적으로만 말씀드린다면, 부정적입니다. 직업으로서는 쉽지 않은 길입니다. 그러나 이쪽에 뜻이 있다면, 조지 나카시마나 구스타프 스틱클리(Gustav Stickley)와 같은 가구를 만들어 보기를 권합니다. 스틱클리의 가구는 LG그룹의 구본무 회장이 특별히 좋아하는 가구로도 유명합니다. 두 디자이너의 가구는 전통적이고 수작업 중심의 제작 방식을 고수하면서 가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류가 통하는 시대입니다. 목공에 대한 자기 철학과 세계적 감각을 갖춘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김현 소목장
이메일 주소 E.h.kim@hanmail.net
인스타그램 @hyeon.kim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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